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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essay10

글쓰기와 태블릿 올 초에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글쓰기라고밖에 말할수 없는건 어떤 종류의 글이라기보다는 그냥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지난 4년간 항상 글을 써왔다. 논문이라는 형태의. 나는 과학적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는 논문을 써왔는데 (과학적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논문도 있다. 아마?), 처음 논문을 썼을 때는 그리 막막하더니 (나의 첫번째와 두번째 논문은 흑역사의 증거로 나는 그 논문을 다시 읽을 때마다 참 부끄럽다), 이게 은근 기계적 작업이라 익숙해지고 나서부터는 말그대로 기계적으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지니고 있는 글쓰기를 위한 에너지는 모두 논문으로 향하였고, 지난 4년간 연구외의 이야기는 거의 쓰지 못했다 (않았다). 사실 다른 글을 쓸 에너지가 없다기보다는, 글을 써야지하면 자연.. 2024. 9. 23.
2024년 2월 1일 2월 1일은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에 도착한 날이다. 그래서 2월 1일이면 혼자만의 작은 기념을 한다. 처음으로 샀던 주황색과 노랑색이 섞인 튤립이 피는 걸 보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친구들에게 알린다. 네덜란드의 2월은 바람이 많이 분다. 내가 도착했던 그날도 그랬다. 날이 조금씩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오후 6시면 이미 어둑해져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오던 그 길, 차에서 바라본 이 마을의 초입, 첫 숙소에 들어섰을 때 공기, 광장으로 가는길에 맞은 바람, 첫 끼로 먹었던 브리 치즈. 이 모든 기억이 오감에 남아있다. 2월 1일이면 항상 생각한다. 차가운 공기가 어딘가 부드럽게 느껴지는 들숨에 봄이 곧 올것 같은 이 평범한 하루에, 이 도시 어딘가에는, 이 곳에 막 도착한 누군가가 있을거라고. 2024. 2. 2.
더위, 길어진 해 더위를 먹었다. 한국 여름의 습한 더위를 견뎌낸 나에게, 유럽의 건조한 여름은 아무것도 아니겠다 싶었는데, 왠걸, 나는 그냥 에어컨의 보호아래, 여름이면 가디건 하나쯤은 들고 다녀야 하는 빵빵한 냉방시스템에 익숙한 연약한 회사원일 뿐이었다. (교수님께 한국의 습한 더위가 싫어서 나는 겨울에 한국 가겠다고 말했는데, 어리석은 자의 자만심이었다) 지중해성기후로 유럽의 여름은 대체적으로 온도가 높더라도 건조한 탓에 실내는 시원하다. 그래서 유럽 대부분 나라는 냉방시스템이 잘 갖춰져있지 않다. 그런데 작년부터 이상기후로 폭염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여름에 냉방시설을 슬슬 구매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폭염이라고 할 순 없지만, 한낮에 햇빛으로 인해 남서향인 스튜디오의 실내 공기가 달궈져 후덥지근하다. 그래서 낮에는.. 2020. 6. 30.
서울의 밤, 퇴근길 서울의 밤이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아주 조각조각의 몇 장면일 뿐이지만, 퇴근길 서울의 밤이 유난히 떠오르는 날이 있다. 현실과 이상의 갭을 이미 알고 있기에 서울의 퇴근길은 말그대로 '드라마 속 로망'이라는 건 알지만. 서울 출퇴근길을 이틀만 경험하더라도 바로 현실로 돌아오겠지만. 최근에 예전에 좋아했던 오구실 시리즈를 보는데, 퇴근하고 남영동 근처에서 친구를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퇴근 후, 서울 어느 동네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그 날의 분위기가 있다. 서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분위기를 화면을 통해서 보는데, 서울 밤 공기가 그리웠다. 시티팝을 들으면, 도심을 지나는 버스에 앉아 바깥의 불빛을을 지나치며, 집으로 향하는 그런 날의 분위기다. 서울에 가면 평일 저녁, 퇴근한 친구와 저녁을 먹고.. 2020. 6. 29.
문화에 대하여 - Cross Cultural Communication Skills in Academia Cross Cultural Communication Skills in Academia: Transferable skill 섹션에 있는 수업이었는데, 수업명부터 흥미로웠다. 특히나 문화차, 커뮤니케이션차에 대해 신경을 쓰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자주 생각하는 편이라 수업에서 무엇을 얻을수 있을지 기대도 되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고, 나의 입장도 조금 정리가 되어 수업을 듣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 먼저, 여러 경험을 통해 문화에 대한 나의 태도와 생각이 형성될텐데, 가장 큰 나의 경험은 아래 두가지이다. 1. 한국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 시각으로 바라볼 때, 아시아의 유교문화권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자랐다는 점 2. 중국과.. 2020. 5. 24.
서핑 Surfing 언젠가부터 서핑이 유행하여 다들 한번씩은 해본듯 했지만 서핑은 (힙함과 거리 먼)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이미 단정해버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나와 어울리지 않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한번은 해보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서핑이라는 행위자체에 대한 주저보다, 검은색 수트를 입고 여러명과 같이 강습을 받는 것을 상상하면, 한국에서는 시도해볼 엄두가 안났다. 그냥 내가 고지식해서 그런가보다. 그런면에서 스리랑카는 이모저모 나에게는 서핑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국에서, 초보자들이 시작하기 좋은 이곳에서 여행에 왔으니까 한번 시도나 해볼까라는 핑계로 부담없이 해보기에 좋았다. 남부 바닷가에서는 수영을 하듯 캐주얼하게 서핑을 하고 있었고, 그런면이 마음속에 장벽을 넘게 만들었다. 스리랑.. 2020. 5. 4.
내추럴 와인 Natural wine - 5월 3일 2019년 5월 3일. 이 날은 나의 와인 역사에 아주 중요한 날이다. (너무 별일 없는 역사라, 역사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이날은 바로! 내가 내추럴 와인에 퐁당 빠진날이었다. 유행하는 것에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당연히 안좋아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마셨는데, 왠걸 너무 너무 너무 좋았다. 맛보다 향에 쉽게 매료되는 후각형인간이라 내추럴 와인에서 뿜어져나오는 아로마에 훅 당했고, 라이트한 산미감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첫 와인이 밸런스가 좋고, 처음 내추럴 와인을 마셨을 때 매력을 느끼기 좋았던 와인이라 더 쉽게 넘어올수있었다. 내추럴 와인 덕분에 삶이 좀 더 풍부해졌다. 서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바, 회현역 바 피크닉(Bar Piknic)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와인을 마시며 좋아하는 친.. 2020. 5. 3.
비가 오는 날 아침에 일어나니, 살짝 어둑한 하늘과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그리고 특유의 분위기에 비가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비가 온다. 오랜만에 비가 오니 반갑다. 2월에는 내내 비가 왔다.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매일매일 비가 오는 날들을 지내보고 나니, 비오는 날을 누가 좋아하냐고 물으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에 조건부를 꼭 붙여서 말해야지. 가끔 오는 비오는 날이 좋아. 한달에 한두번쯤? 이곳에 온 후 흐리고 비가 매일 오는 날들이 한달 넘게 이어지자, 우울하고 피곤하고 무기력해졌다. 향수병이기도 했지만, 날씨의 영향이 컸으리라. 다행히 금방 기분이 풀렸지만 그 후로는 혹시나 몰라 비타민 디와 마그네슘을 필수약 마냥 꼭 챙겨먹고 있다. 비가 오니, 차도 한잔.. 2020. 4. 28.
그릭 샐러드 (Greek Salad) 그릭 샐러드를 처음 접한 곳은 그리스 조그만 섬 코스(Kos)였다. (2015년 10월 10일) 그리스 섬이라고 하지만 터키에 가까운 곳으로, 나도 로도스에서 보드룸 가기 위해 계획 없이 들리게되었다.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난 곳이였나 그랬고, 큰 나무가 있었고 그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마을을 한바퀴 구경하고, 페리 시간을 기다리며 어느 카페의 바깥 자리에 앉아 와인 한잔과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바로 그릭 샐러드였다. 가득했던 페타치즈도, 싱싱했던 올리브도, 본토에서 처음 맛보았으니 제대로 처음을 시작한 것이다. 그릭 샐러드는 그 후부터 내가 샐러드 좀 만들어 볼까 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샐러드가 되었다. 페타 치즈 특유의 꿉꿉과 잘 망가진다는 점 때문에, 마트에서 사온 치즈 한통을 끝까지 먹어본 .. 2020. 2. 18.
떠남. 그리고 델프트에서 첫 날 2020년 2월 1일, 오후 2시 5분 인천발 KE925를 타고 나는 유학길 올랐다. 코로나19(우한 폐렴)로 한창 난리던 때라 마스크를 써야 해서, 공항에서 가족과 찍은 사진을 보면 흡사 전염병 여파로 격리소로 가는 모습이랄까. 편도로 비행기표를 끊은 건, 교환학생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때보다 더 알수 없는 기약없는 떠남. 그렇게 나는 12시간 비행 후, 저녁 6시 30분에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였다. 스키폴 공항으로 입국하는 건 3번째다. 지난 두번은 모두 아침에 도착하였던 것 같으니, 저녁 도착은 처음이다. 학교에 신청한 픽업 서비스를 타고 30분쯤 지나니 델프트에 도착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you are too small for your baggages" 라는 걱정어린 농담이.. 2020.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