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essay

서핑 Surfing

by london_boy 2020. 5. 4.

언젠가부터 서핑이 유행하여 다들 한번씩은 해본듯 했지만 서핑은 (힙함과 거리 먼)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이미 단정해버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나와 어울리지 않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한번은 해보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서핑이라는 행위자체에 대한 주저보다, 검은색 수트를 입고 여러명과 같이 강습을 받는 것을 상상하면, 한국에서는 시도해볼 엄두가 안났다. 그냥 내가 고지식해서 그런가보다. 그런면에서 스리랑카는 이모저모 나에게는 서핑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국에서, 초보자들이 시작하기 좋은 이곳에서 여행에 왔으니까 한번 시도나 해볼까라는 핑계로 부담없이 해보기에 좋았다. 남부 바닷가에서는 수영을 하듯 캐주얼하게 서핑을 하고 있었고, 그런면이 마음속에 장벽을 넘게 만들었다.

이제는 보기만해도 설레는 서핑보드

스리랑카에는 초보자들이 서핑을 배우기 좋다는 곳이 (내가 알기론) 크게 두곳이 있다. 섬 남쪽과 섬 동쪽인데. 섬 동쪽인 Arugambay는 내가 갔던 1월에는 서핑 시기가 아니어서, 남쪽으로 잠시 와 강습을 하고 있는 아루감베이 출신 강사들도 몇명 있었다. 섬 남쪽에서는 Weligama가 가장 초보자 서핑으로 유명할 듯 하다. 나도 이곳에서 서핑을 시작했다. 초보자가 서핑을 배우기 좋다는 의미는 (내 생각으로는) 파도가 자주 오고, 파도가 해안선과 평행하게 깨끗하게 밀려온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서핑을 해보았다는 친구 말로는, 파도 기다리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아, 그리고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정말 수영하다가 한번 서핑해볼까 느낌으로 해볼수 있을 정도. 벌써 가물가물한데, 한시간 강습받는데 한국돈으로 만원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계획은 미리사에 머물면서 해변에서 유유자적해야지였는데, 항상 해보고 싶던 이 미련이나 버리고 가자라는 심정으로 10분정도 버스를 타고 서핑강습소가 많다는 웰리가마로 갔다. 웰리가마에는 서핑강습소가 여러군데 있어 하나 고르면 되는데, 나는 친구가 추천해준 강습소로 갔다. 

그날은 2020년 1월 1일이었고, 오후 2시반쯤으로 예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사를 소개받고, 강습소에서 상위 래쉬가드를 빌려입고, 보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모래에서 보드에 서는 법을 몇번 연습하고, 바로 바다로 들어갔다. 벌써요?라고 몇번 물어봤던 듯. 나는 선생님에 따라 과목 성적이 바뀌는 학생인데, 그런면에서 나와 맞는 강사를 만나 운이 좋았다. 강사가 알려주는 팁 덕분에 첫번째 파도에 바로 보드에 설수 있었고, 못서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사라지니 그 다음부터는 재미도 붙어 신나게 첫 강습을 받았다. 

강습 시간 예약을 하고, 옆 카페에서 마셨던 코코넛음료

서핑을 하기 전에는 보드에 물 때문에 미끄러울텐데 어떻게 설수 있나 의문이었다. 그런데 스탠드업(보드에 서는 것)할 때 제대로 서지 못하는 건 미끄러워서가 아니라, 중심을 못 잡은 이유가 더 큰 듯하다. 왁스 덕분에 마찰이 있어 생각보다 미끄러운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팔힘을 꽤 많이 사용하여야한다. 아마 내가 코어 힘이 없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은데, 스탠드업을 위해 상체를 밀어 올려야 할 때와 패들링 할때 팔힘이 필요하다. 아! 수영을 할수있는지 여부는 초보자에게는 크게 문제가 안되는 듯 하다.(역시 이것도 저스트 마이 오피니언) 어차피 서핑을 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가도 발에 거의 닿을 법한 곳까지만 간다.

스탠드업이 되니, 파도를 타면서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뒤집어 지지 않기 위해) 발을 앞 뒤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해졌다. 파도 위에서 누가 살짝 미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앞으로 나가가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왜 서핑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기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내가 '파도를 탄다'는 표현을 쓴다는게 어색하지만, 그 느낌은 파도를 탄다는 표현 외에는 다른 말로 설명 할수가 없다. 그렇게 해안가 가까이 온 후에, 보드에서 내려와 밀려오는 파도를 뚫고 다시 바다로... 바닷물도 먹고, 다시 밀려나기도 하면서 파도 뚫고 바다 가는게 가장 체력적으로 힘들다. 이렇게 몇번 하다보면 금방 한시간이 간다. 

강습을 받았던 Freedom Surf School

첫 강습이 끝나고, 아주 신나서 반짝이는 눈으로 약간 흥분하여 다음날 오전 강습도 예약했다. 그리고 그날은 미리사의 아름답고 로맨틱한 바닷가 분위기를 즐기고, 다음날은 숙소도 웰리가마로 옮겨 본격적으로 집에 가기전까지 서핑을 하다가자 모드로 바꾸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흐리고 비가 내렸다. 숙소 테라스에서 내리는 비에 이런 날 서핑이 가능한지 걱정했는데, 강사가 파도를 보더니 괜찮다고 했다. 파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초보인터라, 정말 문제가 없었다. 몇번 파도를 타다, 아침이라 몸이 안 풀렸는지 살짝 지쳤는데, 티가 바로 났는지 서핑보드 위에 앉아 쉬는 방법을 알려줬다. 바로 앉아서 보드 밖에 내려놓은 발로 물을 휘젖으며 파도 방향도 보면서 재충전하는 취지의 시간인데, 물에 둥둥 떠있으니 기분이 좋아져 그냥 보드에 몸을 앞으로 기대어 누었다. 그리고 비가 툭툭 떨어졌다. 바다 위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얼굴을 보드 위에 기대어 해수면에 붙어있는듯한 느낌이 좋았다. 강사에게 이렇게 보드에 기대어 비를 맞으면서 바다에 떠있는,이 느낌이 너무 좋다고, 너무 신난다고, 몇분만 더 이렇게 있자고 말했다. 비가 와서 더 좋았다. 

흐리고 비가오던 아침

 

그리고 그날 오후도 강습을 받았고, 귀국날 오전에는 연속으로 두번의 강습을 받았다. 마지막 날은 소프트에서 하드로 바꿔 타도 될것 같다고 하여, 하드보드로 탔는데 속도가 확실히 더 있어서 처음에는 당황하다 나중에는 또 신나게 탔다.  

마지막 날 화창한 아침

나의 서핑 선생님 Dulip은 서핑을 근 30년 했다고 했다. 콜롬보행 비행기 옆자리 앉았던 스리랑카 청년이 비치보이를 조심하라고 말한터에, (편견을 가지면 안되지만 여행중에는 아주 방어적이고 조심하게 되는 터라) 살짝 긴장했는데, 좀 웃긴일이 없진 않았지만 좋은 강사였다. 그가 알려준 팁 덕분에 스탠드업도 바로 할수 있었고, 강습때도 잘 알려줘서 하드보드까지 무사히 탈수 있었다. 사실 강사없이 앞으로 내가 혼자 탄다 생각하면 자신이 있진 않다. 성공적으로 스탠드업을 하고 속도도 잘 조절하여 파도를 타고 해안가에 온 후에는, 보드에 내려 항상 뒤를 돌아봐 Dulip의 칭찬을 기다렸다. 서핑할때 전적으로 의지했던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해안가에서부터 둘이 열심히 밀려오는 파도를 뚫고 바닷물 먹으며 적절한 포인트로 향해 가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가 해준 말이 서핑을 탈때마다 생각날 것이다. "Keep the balance. You did stand up for the first wave"

마지막 강습이 끝나고 툭툭이를 태워준 서핑 선생님 Dulip

스리랑카에서 가장 신났던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스리랑카에 간다면, 해안을 따라 (갈레와 미리사와 웰리가마와 그리고 가보지 못한 바닷가 마을들) 여행하지 않을까 싶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서핑에 빠져버릴 줄이야. 역시 항상 마음을 열어둬야한다. 그게 잘 안되어서 삶의 재미를 놓치면 너무 아쉬울텐데 그게 잘 안된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면, 때라는게 있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다른 시기에 다른 곳에서 서핑을 시작했으면, 이렇게 빠져버릴수 있었을까. 스리랑카여서, 새해이기에 뭔가 시도해보자는 용기내기 좋아서, 내가 만난 강사가 Dulip이어서, 이때가 여행 막바지 자유로운 시간이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얼굴이 다 타버리고, 몸이 아파도 계속 탈만큼, 지금도 생각날만큼 이렇게 신나는 무언가가 아직 있다는 사실이 좋다. 다음엔 무엇이 있을까. 아... 서핑하러 또 가고 싶다. 

아침 서핑을 위해 바다로 향하는 멋진 서퍼

'나의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의 밤, 퇴근길  (0) 2020.06.29
문화에 대하여 - Cross Cultural Communication Skills in Academia  (0) 2020.05.24
내추럴 와인 Natural wine - 5월 3일  (0) 2020.05.03
비가 오는 날  (0) 2020.04.28
그릭 샐러드 (Greek Salad)  (0) 2020.02.18